납 배출주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무슨 옛날 이야기인가 싶었다. 중금속 배출을 돕는다는 이 주사가 최근까지도 상당한 규모로 유통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꽤 낯설게 다가왔다. 어릴 적 TV에서나 보던 ‘해독’이라는 단어가 2020년대의 진료실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더 눈에 들어온 건 주사 자체의 효능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경로로 사람들에게 도달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유통이라는 렌즈로 보면 이 사안은 단순한 의료 이슈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합법과 편법 사이’의 전형적인 사례처럼 읽힌다. 효능 논쟁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결론이 갈리는 영역이지만, 경로 논쟁은 훨씬 더 명확한 사실 위에 서 있다. 어떤 약이 어디서 만들어져 어디를 거쳐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가라는 질문은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주사의 상당 부분이 동네 의원을 통해 유통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의 관련 분석 기사를 보면 납 배출주사 공급량에서 특정 지역이 유독 눈에 띄는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함께 짚고 있다. 숫자 자체보다 흥미로운 건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대형 병원의 정식 처방 흐름이 아니라, 생활권 의원이라는 가까운 접점을 타고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구조라는 점에서다. 대형 병원이라면 약제부가 따로 있고, 발주와 재고, 폐기까지 단계마다 기록이 남는다. 반면 작은 의원은 원장 한 사람이 진료와 발주와 재고를 동시에 챙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록의 밀도가 구조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문제는 그 낮은 밀도가 선의와 악의를 구분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통이라는 주제를 몇 년째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건, 세상 대부분의 물건은 ‘공식 경로’와 ‘실제 경로’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는 도매상과 정식 계약을 거쳐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더 짧고 편한 길이 늘 존재한다. 문제는 그 짧은 길이 늘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작은 가게가 재고를 돌려 쓰고, 동네 상회가 급한 물량을 서로 나누는 일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 자체로는 효율의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어떤 업종에서는 그런 융통성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예컨대 동네 철물점끼리 나사를 서로 빌려주고, 인쇄소끼리 급한 용지를 돌려 쓰는 관행은 수십 년째 이어져 왔다. 그 관행이 문제가 되는 건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품목일 때다.
그런데 의약품은 이야기가 다르다. 효율보다 안전이 우선이고, 그 안전은 유통 경로의 투명성 위에 서 있다.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누가 얼마나 보관했는지, 누구에게 얼마나 공급됐는지가 사라지면 사후에 무슨 일이 생겨도 추적이 안 된다. 동네 의원이라는 접점은 환자 입장에서 접근성이 좋지만, 역설적으로 그 접근성이 유통 관리의 사각지대를 키우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접근성이 좋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검증의 단계가 짧다는 뜻이기도 하다. 환자는 원장의 얼굴을 믿고, 원장은 거래처의 오랜 관계를 믿는다. 그 신뢰의 사슬이 촘촘할수록 서류상의 확인은 느슨해지기 쉽다. 신뢰와 검증은 종종 대체재처럼 취급되지만, 사실은 서로를 보완해야 하는 관계다.
이 대목에서 예전 직장에서 겪은 일이 떠오른다. 사내 비품을 관리하던 시절, 정식 구매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급하게 조달한 물품이 몇 달 뒤 재고 대장과 맞지 않아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 뒤로는 ‘급하면 더 정식으로’라는 원칙을 세웠다. 유통이란 결국 기록이 남는 경로를 고집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 배웠다. 그때 알게 된 또 하나는, 기록이란 것이 누군가를 의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장이 맞지 않으면 담당자 개인이 의심받는다. 대장이 맞으면 시스템의 문제로 논의가 옮겨간다. 기록의 유무가 책임의 방향을 바꾸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원칙이 소비자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자는 주사 한 대를 맞을 때 그 약이 어디서 왔는지 알 길이 없다. 가격이 싸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이 먼저 돌고, 정식 허가 여부나 공급 경로는 뒷전이 되기 쉽다. 건강기능식품이나 다이어트 제품 시장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자주 본다. 광고 문구는 화려한데 그 뒤의 유통 구조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제품은 성분표보다 모델의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후기는 성분보다 ‘먹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체험담으로 채워진다. 그 체험담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유통의 투명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여기서 잠깐 유통이라는 개념 자체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유통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좁게는 물류를 뜻하지만, 넓게는 정보와 신뢰의 이동까지 포함한다. 의약품 유통에서 중요한 건 물건의 이동보다 그 이동에 붙는 책임의 이동이다. 누가 책임지는지가 분명해야 소비자는 안심할 수 있다. 그 책임의 사슬이 끊어지는 지점이 바로 사각지대다. 사각지대는 어둡고 은밀한 곳에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밝고 평범한 지점에서 조용히 생긴다. 아무도 악의를 품지 않았는데도 책임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 그 틈으로 문제가 스며든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사각지대는 제도만으로도, 감시만으로도 메워지지 않는다. 제도는 최소한의 기준을 정할 뿐이고, 감시는 인력과 시간의 한계에 부딪힌다. 결국 남는 것은 현장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은 확인들이다. 발주서 한 장을 다시 읽는 일, 거래처의 허가증 사본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일, 이상한 재고 차이를 그냥 넘기지 않는 일. 그런 사소한 습관들이 모여 유통의 밀도를 만든다. 밀도가 높아지면 사고는 줄고, 사고가 줄면 신뢰가 쌓이고, 신뢰가 쌓이면 다시 그 신뢰를 확인할 유인이 생긴다. 선순환의 출발점은 결국 아주 평범한 반복이다.
이번 사안을 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 사회가 ‘가까운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편의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편의는 좋지만, 그 편의가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졌는지 묻지 않으면 언젠가 그 비용은 다른 곳에서 청구된다. 동네 의원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동네 의원이야말로 유통 관리가 더 촘촘하게 작동해야 하는 접점이라는 뜻이다. 대형 병원은 이미 시스템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 개인의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반면 동네 의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시스템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 신뢰를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일이야말로 지역 의료의 질을 끌어올리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결국 함의는 단순하다. 유통의 건전성은 거창한 제도 개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이게 어디서 왔지’라고 한 번쯤 물어보는 습관, 판매자가 ‘이 경로가 맞나’를 스스로 점검하는 태도, 그리고 그 물음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 공개가 함께 있어야 한다. 주사 한 대의 유통 경로를 들여다보는 일이 결국 우리 생활 전반의 유통을 건강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약국 봉투에 찍힌 약 이름을 한 번 더 읽어보는 일, 식당의 원산지 표시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일,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긴 제품의 판매자 정보를 확인하는 일. 그 작은 습관들이 모여 우리를 둘러싼 유통의 지도를 조금씩 선명하게 만든다.